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C. S. 루이스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북아일랜드]]의 [[벨파스트]]에서 태어났다. 그의 가까운 친구에게는 잭(Jack)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. 어머니의 사망을 계기로 15세부터 [[무신론자]]가 되기도 했지만[* 그는 “하느님에게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나 있었다”고 한다.][* 사실, 이런 이유로 무신론자가 되는 종교인들은 흔한 편이다. 개신교에서 떠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.], 가톨릭 신자인 [[J. R. R. 톨킨|톨킨]]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[[1929년]]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[[삼위일체|성 삼위일체]](holy trinity) 성당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다. [[옥스퍼드 대학교]]에서 문학과 철학 동아리인 '''잉클링스'''의 멤버였으며, 《반지의 제왕》의 저자인 [[J. R. R. 톨킨]]과 우정을 유지했다. 그는 [[개신교]], [[가톨릭]]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한 기독교 변증[* 대표적인 것으로 고통의 문제, 순전한 기독교,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있다. 작품 목록 참조.]과 소설, 특히 후에 영화화 된 [[나니아 연대기]]로 유명하다 언론으로부터 <[[20세기]] 최고의 기독교 변증론자>라는 찬사를 받았고,[* 기독교 사상사에서 깊이만 보면 루이스는 미약한 수준이겠지만(본인부터 그렇게 말했다), 대중을 상대로 알기 쉽고 찰지게 기독교 교리를 설파하는 점에 있어서는 상대가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.] 뛰어난 필력으로 인간의 본성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. [[알리스터 맥그래스]] 신부나 제임스 패커 신부, 존 스토트 신부, 팀 켈러, 케빈 드 영, [[존 파이퍼]], 존 레녹스, 존 M.프레임, 오스 기니스, 래리 크랩, 미로슬라브 볼프, [[윌리엄 레인 크레이그]], [[알빈 플란팅가]], 톰 라이트 주교, 프랜시스 콜린스, 스캇 솔즈, 케빈 벤 후저, 마이클 리브스, 달라스 윌라드, 유진 피터슨, 필립 얀시, [[로완 윌리암스]] 대주교, 로날드 사이더, 셰인 클레어본, 프레데릭 비크너 같은 개신교ㆍ성공회ㆍ복음주의권 신학자나 사목자, 철학자, 심리학자, 교사, 사회운동가, 예술가, 평신도 지식인들에게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. 가톨릭 신학자들 중에도 로버트 배런이나 피터 크리프트, 마이클 와드, [[요한 바오로 2세]][* 교황의 팬심이 어느 정도였냐면 루이스가 쓴 책들을 닥치는대로 찾아 읽은 건 기본이요 강론 때 그의 책을 인용하거나, 루이스의 친구였던 오웬 바필드에게 루이스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할 정도로 루이스에 대한 팬심이 남달랐다. 가장 좋아하는 책은 네 가지 사랑이라고.]처럼 루이스의 소설과 변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